
1. 개요
약 9개월 만에 메인 스토리인 10장 상편이 공개되었다. 이번 장의 주인공은 뫼르소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인 만큼, 어떤 과거와 내면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특히 김지훈 디렉터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이방인』을 꼽았던 만큼 기대가 컸다. 동시에 그 작품을 뫼르소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할지 걱정도 있었다. 실제로 이번 상편에서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와 상황, 여러 은유를 느낄 수 있었다
플레이 방식의 변화도 눈에 띄었다. 기존의 진행 방식에 쯔꾸르풍 탐험과 실시간 전투가 더해졌는데, 처음 PV를 봤을 때는 우려도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상편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2. 게임 시스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게임 시스템부터 짚고 싶다
2.1 스토리 연속 재쟁
우선 스토리 스테이지가 연달아 배치되어 있을 때, 다음 스테이지로 곧바로 이어지는 기능이 추가된 듯했다. 흐름이 끊기지 않아 스토리에 몰입하기에는 좋았지만, 스테이지 사이의 경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어디까지가 한 스테이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중간에 끊고 싶을 때는 오히려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옵션에서 연속 재생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2.2 조작과 화면
쯔꾸르풍 플레이 자체는 전반적으로 좋았다. 다만 조작과 화면 설정에는 조금 더 선택지가 있었으면 했다
나는 PC로 플레이했기 때문에 모바일 조작감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이전에 모바일로 비슷한 게임을 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번처럼 실시간 전투까지 있는 경우에는 조작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다
라이팅도 일부 구간에서는 지나치게 밝거나 어둡게 느껴졌다. 분위기를 위한 연출이겠지만, 밝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면 더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동키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른 키의 배치는 괜찮았지만, WASD 이동에 익숙한 나로서는 방향키를 사용하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전통적인 쯔꾸르 게임의 조작 방식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키 설정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중반부터는 익숙해져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플레이 도중 조작감을 개선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는데, 실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중편을 플레이할 때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2.3 진행과 상호작용
가장 좋았던 부분은 맵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진행 자체는 선형적이었지만, 그 안에 다양한 상호작용이 마련되어 있었다. 맵에 있는 대부분의 오브젝트를 조사할 수 있었고, NPC들과 대화하거나 전투를 벌이는 것도 가능했다. 심지어 상인에게 물건을 산 뒤 전투를 걸어 돈을 얻을 수도 있었다
반대로 주요 NPC를 죽였을 때는 쓰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NPC가 나타나 일행을 처형하고, 시간이 되돌아가면서 로비이자 안전지대 역할을 하는 샘터로 돌아가기도 했다. 아직 한 번만 플레이해서 보지 못한 전투와 사망 장면도 있지만, 여러 NPC에게 이런 반응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전투는 상징계와 그림자계로 나뉜다. 상징계에서는 쯔꾸르 맵 안에서 실시간으로 전투가 진행되고, 그림자계에서는 기존 림버스의 턴제 전투가 진행된다. 두 방식이 함께 들어가 있어 플레이에 변화를 주었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NPC들이 판매하는 아이템을 모으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템마다 상징계나 그림자계의 전투를 돕거나 플레이를 편리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었고, 설명에 붙은 플레이버 텍스트를 읽는 것도 즐거웠다. 아이템뿐 아니라 맵 곳곳에 있는 텍스트도 설정과 연결되어 있어, 구석구석 찾아보고 읽게 되었다
2.4 연출과 편의성
길 안내, 피격 범위 표시, 자동 전투 등 편의 기능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대부분 끄고 진행했지만, 플레이 방식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전체적인 아트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기존의 비주얼 노벨식 연출과 쯔꾸르풍 대화 장면이 적절히 섞이면서 몰입감이 높아졌다. 맵 위에서 대화가 진행될 때는 각 수감자가 어디에 서 있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와, 기존 방식보다 장면이 더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버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내가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직접 겪지 못했다.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프로젝트 문의 개발 여건을 생각하면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중하편이나 이후 스토리에서도 이 방식을 활용한다면, 조작과 화면 설정을 조금 더 다듬어 주었으면 한다
3. 스토리
체감상 이번 상편은 지금까지의 메인 스토리 상편 중 가장 분량이 많았다. 탐험과 전투 때문에 플레이 시간이 늘어난 점을 고려하더라도, 끝까지 진행하는 데 거의 7시간이 걸렸다. 반면 이야기의 큰 줄기만 놓고 보면 비교적 단순하다
스토리는 9.5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진다. 뫼르소는 N사의 최고형인 ‘시지프형’을 선고받고 시지프 백화점으로 보내진다. 버스팀은 그를 구하기 위해 N사와 손을 잡고 백화점에 잠입한다. 이후 뫼르소와 합류한 일행은 백화점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다가,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목표를 갖게 된다
단테와 수감자들은 명품관을 돌아다니던 중, 르루주들의 계획을 염탐해 달라는 플라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후 플라넬의 감정평가서를 이용해 다른 르누아르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르누아르와 협력하고 르루주와 적대하는 관계가 된다
자신들의 신을 잃은 르루주가 새로운 신을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르누아르는, 단테 일행에게 신을 죽일 수 있는 황금못의 제작을 부탁한다. 결국 일행은 르누아르와 함께 르루주의 새로운 신을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승리가 탈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백화점의 영원한 존속을 바랐던 르누아르가 주도권을 잡자, 시지프 백화점은 더 이상 유행도 변화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된다. 단테와 수감자들 역시 그 안에 영원히 갇히고 만다
카르멘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계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취지로 조롱한다. 그리고 ‘상편: A엔딩 — ATARAXIE’라는 문구와 함께 이야기가 끝난다
3.1 생각
초반부터 의외였던 점은 N사와의 관계였다. 이전 장에서 N사 쪽 이야기를 봤을 때는 이번에도 적대하는 상태로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후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작은 서로 손을 잡는 구도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원전과 철학이 이야기 안에 녹아드는 방식이었다. 곳곳의 대사와 상황에서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 카뮈의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느껴졌다. 이를 별도로 설명하기보다 인물들의 행동과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감탄했다
물론 내가 카뮈의 책과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박 겉핥기 정도로 알고 있는데도 연결되는 지점이 보여서, 원전을 더 잘 아는 사람이라면 훨씬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도 여러 동화와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섞여 있어, 이런 연결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3.2 의문과 추측
상편을 마치고 나니 해결된 것보다 궁금해진 것이 더 많았다. 아래는 앞으로 밝혀졌으면 하는 의문과 개인적인 추측이다
시지프 백화점은 어떻게 경험반죽을 만드는가?
- 우선 시지프 백화점에서 경험반죽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궁금하다. 백화점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경험반죽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백화점의 구조와 목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
거인의 조건과 뫼르소가 받은 교육
- N사의 거인이 되는 조건도 궁금하다. 뫼르소는 거인들이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두려움이 ‘부조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그렇다면 거인이 될 자격은 단순한 능력이나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부조리를 인식하는 특정한 방식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카뮈의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인식에 도달한 사람만 거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런 관점에서 보면, 뫼르소가 거인의 자격을 갖추도록 훈련받았다는 점도 어머니와 연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깨달았다기보다, 어머니에게 그러한 관점을 반복적으로 교육받고 주입받은 결과일 가능성도 떠올랐다. 아직은 상편을 보고 떠올린 해석이라, 이후 이야기에서 어떻게 풀릴지 기대된다
A 엔딩 다음엔?
- 이번 결말이 굳이 ‘A엔딩’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을 보면, 중하편에서는 다른 선택이나 결말을 보여줄 것 같다. 자연스럽게 B엔딩과 C엔딩을 예상하게 되지만,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 이번에는 르누아르를 도왔으니, 중편에서는 반대로 르루주를 돕는 전개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다만 그렇게 진행한 결과가 반드시 B엔딩일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C엔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다
- 내가 르루주가 듣는 새로운 목소리, 즉 그들이 새로운 신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를 카르멘이라고 추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C’가 카르멘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알파벳 하나에서 출발한 추측이지만, 마지막에 카르멘이 등장한 만큼 계속 신경이 쓰인다
네 번째 세력과 크로머의 언니
- 아직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네 번째 세력도 궁금하다. 이들이 백화점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른 세력과는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다
- 크로머의 언니가 시지프를 무너뜨리려는 이유도 의문이다. 내가 알기로는 N사의 간부인데, 왜 그런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걸까? N사 내부의 이해관계 때문인지, 개인적인 동기가 있는 것인지 이후에 밝혀졌으면 한다
엔딩에서의 연설
- 엔딩에서 카르멘이 긴 연설을 하는데 뭔가 있는거 같다. 예전 라오루에서 처럼 사실 혼자 말하는게 아니라 중편이나 상편에서 누군가, 단테나 뫼르소가 이 연설에 답을 하는 형태로 형태로 진행될거 같다
4. 상편을 마치며
이번 상편은 새로운 플레이 방식과 스토리 모두 만족스러웠다. 조작이나 화면 설정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맵을 직접 돌아다니며 상호작용하고 수감자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경험이 그 아쉬움을 충분히 덮어 주었다
특히 카뮈의 작품과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시지프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는 점이 좋았다. 상편만으로 모든 의미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후 이야기를 더 보고 싶어졌다
A엔딩으로 끝난 지금, 이 정체된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벗어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뫼르소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중편과 하편이 정말 기대된다
5. 평점과 그림
| 평가 요소 | 점수 | 이유 |
|---|---|---|
| 플레이 | 2 | 실시간 전투와 기존 턴제 전투가 어우러져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다양한 오브젝트와 NPC의 상호작용, 아이템 수집 덕분에 맵을 구석구석 탐험하는 과정도 즐거웠다 |
| 스토리 | 2 | 카뮈의 작품과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인물의 행동과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인상적이었다. A엔딩으로 끝나는 전개는 여러 해석과 추측의 여지를 남기며 이후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
| 아트, 사운드 | 2 | 시지프 백화점의 분위기를 살리는 아트와 기존 비주얼 노벨식 연출, 쯔꾸르풍 대화 장면이 잘 어우러졌다. 프문스러운 디자인들이 많아졌고, 점점 더 매력적인 디자인의 캐릭터도 많아 좋았다 |
| 완성도, 편의성 | 1 | 길 안내와 피격 범위 표시 등 편의 기능은 좋았지만, 이동키 변경과 밝기 조절 등 설정의 선택지가 부족했다 |
| 개인적 만족도 | 1.5 | 아쉬움보다 새로운 탐험 방식과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이 컸다. 상편을 마친 뒤에도 여러 의문과 해석을 떠올리게 했고, 중편과 하편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
| 총평: 8.5/10 |
